본 기획은 2014년부터 시작하는 산학협력단의 ‘이달의 연구자’ 선정과 함께 합니다. 산학협력단은 매주 금주의 우수논문을 선정해 이 중 매달 ‘이달의 연구자’를 선발하며, 기획은 한 달에 한 번 진행됩니다. 본 기사는 인터넷한양과 산학협력단 뉴스레터에서도 만날 수 있습니다.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지난 2011년 그 해의 과학계 10대 이슈를 발표했다. 힉스 입자, 중성미자 등과 함께 이 리스트에 이름을 올린 새로운 물질이 있다. 0.2 나노미터 두께의 신소재 ‘그래핀(Graphene)’이다. 과학계에서 다양한 활용가능성이 제기되는 가운데, 허관산 교수(공과대·기계)가 그래핀 합성물에서 나노 입자의 크기를 조절하는 새로운 방법을 제안했다. 기존의 연구가 지닌 한계를 극복한 것은 물론, 그래핀 합성물에 대한 후속 연구에 새로운 시사점을 제시한다.
나노 입자의 크기, 그래핀 가능성의 열쇠
연필심에 사용되는 흑연은 탄소들이 벌집 모양으로 얽혀있는 얇은 막이 층층이 쌓인 구조다. 이 흑연의 한 층을 ‘그래핀’이라고 한다. 흑연에서 그래핀을 최초로 분리한 영국의 연구팀은 지난 2010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이처럼 그래핀은 발견 당시부터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뛰어난 물리적, 화학적 안정성과 가능성 때문. 그래핀은 구리보다 100배 이상 전기가 잘 통하고, 실리콘보다 100배 이상 전자 이동성이 빠르다. 강도는 강철의 200배로 다이아몬드와 유사하다. 덕분에 그래핀은 현대 사회에서 ‘꿈의 물질’로 불린다. 허 교수는 “그래핀은 현대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물질”이라며 “초고속 반도체, 고효율 태양전지, 플렉서블 디스플레이 등 적용 범위가 무궁무진하다”고 설명했다.
과학계는 발견 이후 꾸준히 그래핀의 우수한 전기적, 광학적 특성을 활용할 방법을 실험했다. 그리고 그래핀 산화물(GO, Graphene Oxide) 표면에 금속 나노입자를 코팅하면 성능이 향상된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합성 방법은 간단하다. 은나노입자로 코팅할 경우라면 그래핀 산화물에 질산은 수용액(Aqueous AgNO3)을 첨가한다. 질산은 분자는 이온화되고, 은 이온(Ag+)은 그래핀 산화물의 넓은 표면에 단단히 결합한다. 이때 환원제를 첨가하면 그래핀 산화물에 은나노 막이 형성된다. 환원제가 은 이온과 그래핀 산화물의 결합 상태를 단단히 굳히는 셈. 허 교수는 이러한 합성 과정을 보다 깊이 파고들었다. 그래핀 산화물과 나노입자의 합성 과정에서 비타민 C를 환원제로 사용하는 방법을 제안한 것. 허 교수는 “그래핀 합성물을 만드는 기존 과정에 비해 훨씬 간단하고 친환경적 방법”이라고 평했다.
기존의 연구들은 그래핀 산화물 표면에 금속 나노입자를 입힐 때 수소화붕소나트륨(Sodium Borohydride), 포름알데히드(Formaldehyde), 히드라진(Hydrazine) 등과 같은 유독성 환원제를 사용했다. 때문에 유독성 환원제를 처리하기 위한 복잡한 공정이 추가됐고, 이는 그래핀의 상용화에 걸림돌이 됐다. 허 교수는 페르난데스 메리노(Fernandez Merino) 연구팀의 논문에서 비타민 C가 탈산소화 효과를 지닌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환원은 물질이 산소를 잃는 과정. 이는 곧 비타민 C가 환원제로 사용될 수 있음을 시사했다. 허 교수는 논문을 통해 비타민 C가 그래핀 합성 과정에서 환원제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보였다. 허 교수는 “히드라진을 사용했던 이전 연구와 달리 친환경, 저비용, 고효율의 합성법을 제시했다”고 평했다.
아울러 허 교수는 초음파처리를 통해 나노입자의 크기를 조절하는 방법을 제안했다. 나노입자의 크기와 형태가 중요한 이유는 그에 따라 그래핀 합성물의 효율성이 달라지기 때문. 허 교수는 “아직은 어떤 크기의 입자가 성능을 최적화 하는지 모른다”며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는 사실 자체가 시사점을 던져주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핀 합성물의 성능 실험에서 나노입자의 크기와 형태가 중요한 지표가 되리라는 전망이다. 연구팀은 다양한 분석 기술(XRD, TEM, HR-TEM, SAED)을 이용해 질산은 수용액의 농도와 초음파처리 시간이 은나노입자의 크기와 형태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했다. 허 교수는 “논문에서 발표한 기술이 다양한 후속 연구에 활용되기를 바란다”고 기대했다.
기계공학과 교수, 화학연구에 뛰어들다
허 교수의 연구팀이 발표한 내용은 기계공학보다 화학에 가깝다. 에너지 저장 및 활용 연구실을 운영하는 허 교수는 ‘촉매제’의 관점에서 그래핀에 접근했다. 그래핀 기반의 촉매제는 에너지 생산의 효율성을 높이기 때문. 나아가 그래핀은 에너지 저장 용량을 높인다는 점에서 허 교수의 연구와 밀접한 관계다. 그래핀을 활용해 슈퍼커패시터(Super Capcitor, 초용량축전지)를 제작할 경우, 에너지 저장 용량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며 오래 사용해도 성능이 저하되지 않는다. 협력 연구에 드는 시간을 줄이기 위해 스스로 연구를 시작했다는 허 교수는 “전공 분야와 달라 어려움도 컸지만, 다양한 지식을 쌓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라고 했다. 허 교수는 발표 기술을 이용해 훨씬 더 효율적인 에너지 저장 방법을 연구할 계획이다. 슈퍼커패시터의 저장 용량을 향상시키는 나노입자의 크기, 단위면적당 저장값을 높이는 3차원 구조의 그래핀 등이 연구 목록에 포함됐다.
허 교수는 이달의 연구자 수상 소식에 기쁨을 표했다. “연구자로서 동기부여가 되는 상이네요. 한양대에 부임한지 1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 이런 상을 받게 돼 매우 영광입니다.” 연구를 위해 다른 학문을 공부할 정도로 열정적인 허 교수. 그의 바탕은 ‘근면함’이다. 허 교수는 “연구에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들어가기 마련”이라며 “한정된 시간에 더 많은 연구를 진행하도록 자신을 단련해야 한다”고 했다. 연구팀 논문의 다운로드 기록은 발표 후 꾸준히 상승 중이다. 구체적인 연구 가능성을 예상하기는 이르지만, 허 교수가 발표한 기술이 그래핀 연구에 힘을 보탤 것은 분명해 보인다. ‘꿈의 물질’ 그래핀의 상용화는 이렇게 가까워지고 있다.
- 곽민해 취재팀장
- cosmos3rd@hanyang.ac.kr